"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고인이 된 서병주 검사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습니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면서 생기는 억울한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검사의 본분은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고인이 뺑소니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검사로서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분명한 건 고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추가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사기관은 절 범인으로 정해놓고 수사했습니다. 제게 불리한 증거나 정황만 보고 유리한 증거와 정황은 무시했습니다.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했습니다. 족적에 매몰된 수사부터 문제였습니다. 계획 살인이라면 족적을 남기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아 이건 피고인으로서 제 족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제가 피고인석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로스쿨 오기 전까진 전 평생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절 피고인으로 만든 검사님이 서병주씨보다 더 끔찍하지만 격분해 지문을 남기고 살인을 한 만큼 어리석진 않거든요. 제가 커피에 설탕을 타 먹인 걸 진범이 목격해야만 설탕 봉지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목격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건 당일 행방이 묘연해진 피해자의 볼펜 수사기관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필로폰 투약 방법 또한 주사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습니다. 위가 위치한 여길 필로폰 주사 바늘로 깊이 찔렀다면 위로 약물이 들어갔겠죠. 근데 수사기관은 왜 이걸 인슐린 주사 흔적이라고 그냥 넘어갔을까요? 방어흔은 필사적이지도 많지도 않았습니다. 치밀하게 족적을 남기지 않고 몰카를 설치한 진범이라면 빨리 살해할 수 있는 주사를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음료로 인한 투약은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길게는 30분 정도까지 소요될 수 있고 주사 투약은 정맥을 통할 경우 수초 이내에 쓰러지거나 정맥이 아닌 곳으로 주입한다 하더라도 10분을 넘기긴 힘들다고 하니까요. 저랑 강 솔B가 다녀간 이후 14시 25분경 진범이 피해자에게 가서 필로폰 주사를 투여했을 경우 사망추정시각과도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족적, 몰카, 주사 이 모든 의구심들은 검찰 측에서 나왔어야 했고 이 모든 가능성들을 함부로 배제해선 안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가 범인이란 확증편향에 빠져 진범이 거릴 활보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됩니다.
제가 정말 로스쿨 살인마일까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기억해 주십시오.
이건 제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스모킹 건입니다. 사건 당일 그 시각 제 노트북을 해킹하러 왔다가 옷장에 숨었던 친구가 제 결백을 밝혀주기 위해 녹음한 진술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동안 증인으로 서 줄 것을 설득해왔지만 실패했는데 오늘 전예슬양에게 이걸 전해 주는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출할 생각 없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스모킹건을 확보하긴 했지만 이건 현재 증거로서의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제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그게 궁금합니다. 수차례 공판을 통해 저는 범인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 편사 수사를 한 검찰에서 제시한 유죄 증거의 탄핵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설탕이 있었다고 진술한 헌법학자께선 재판부가 자신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기 바라는 탄원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검사의 피의사실공표로 아버지를 잃은 제자는 유죄추정의 뜨거운 맛을 보고도 무죄추정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저기 앉아 있습니다. 검사의 삽질을 보다 못해 삼촌을 죽인 진범을 직접 찾아 나선 제자도 이 판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검사 측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그것은 저의 무죄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형법 교수인 저는 학생들에게 법이 정의롭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법을 정의롭게 하는 것은 무죄추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한 법관의 공정한 저울질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본 법정에서 저 예비 법조인들에게 공정한 저울질에 의한 정의로운 판결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가 나온다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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